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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kids@kids.kotel.co.krFri May 12 20:49:52 1995
Date: Sat, 13 May 1995 09:43:31 +0900 (KST)
From: kids@kids.kotel.co.kr
To: yang@aero1.snu.ac.kr
Subject: [다시 쓰는 글] 어버이날 in KIDS
[ SNU ] in KIDS
글 쓴 이(By): staire (강 민 형)
날 짜 (Date): 1995년05월08일(월) 06시41분19초 KST
제 목(Title): [다시 쓰는 글] 어버이날
이 글을 올린 지 꼭 일 년이 지났습니다. 며칠 후 글들이 날아가버렸을 때에도
저는 별로 섭섭하지 않았지요. 1 년만 기다리면 다시 올릴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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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어머니
그 시대에는 누구나 그렇게 어렵게 학교를 다녔을까...
어머니께서 연세대 국문과에 들어가신 것은 마침 외가의 사정이 한참 좋지 않을
때였고 더우기 외할아버지께서는 딸들을 대학 보낸다는 것에 대해 회의적인
분이셨기에 어머니의 대학 생활에 거의 도움을 주지 않으셨다고 한다.
외할머니가 아니었으면 아마 연세대의 문을 두드리는 것조차도 불가능하지
않았을까...
(외할머니 이야기는 서울대 보드 2081번에...)
어머니께선 학비를 벌기 위해 갖가지 아르바이트를 하셨다.
과자 공장에서 속이 메슥메슥해지도록 하루종일 단내를 맡으시기도 했고
사진관의 암실에서 손결이 거칠어지는 것을 마다하지 않고 현상액에 손을 담그기도
하시고...
staire의 공대 학부 시절,
잠을 쫓아가며 아르바이트를 하고
집에 돌아와 옷을 갈아입으며 팔에 남아 있는 검붉고 시퍼런 피멍 자국을 볼 때마다
역사는 과연 반복되는 것일까 한없이 되묻곤 했다.
어머니께서는,
20세 시절의 젊으신 어머니께서도
과자 공장에서 당신의 팔을 꼬집어 잠을 쫓아가며 학비를 대셨을까...
이렇게 다니다 휴학하다...를 반복하시던 어머니께서는
마침내 학업을 중도에서 그만두셔야 했다.
어머니의 두 번째 시집에 남아 있는 다음 구절은
그 때의 심정을 써내려간 것일까.
별을 보지 않겠다
밤의 창가에 다시 서지도 않겠다
별로 남으려는 희망은
그러나 쉽게 잊혀지는 게 아니다
2. 아버지
아버지께서 서울대 화공과에 합격하셨을 때
집안에서는 아무도 기뻐하지 않으셨다고 한다.
큰아버지께서 재수를 하셔서 아버지와 동시에 합격하신 것이었다.
집안에선 두 사람 몫의 학비를, 더우기 서울에서의 유학 비용을 댈 처지가
아니었고...
결국 아버지께서는 서울대에 등록하지 못하셨고
부산대학교 사범대에 후기로 들어가셨다.
사범대는 등록금이 싸고 취직이 보장돼 있어
당시 가난한 집 학생들에겐 가장 편하게 대학을 다닐 수 있는 길이었던 거다.
의대를 다니면서 늘 수학책을 끼고 다니던 staire를 아버지께선 불안해하셨다.
녀석이 저러다 의대를 뛰쳐나오고 말 거라는 낌새를 채신 거겠지.
그래서 staire는 아버지 몰래 수학 공부를 해야 했다.
본과 2학년 여름방학때였던가,
밤에 Arfken의 수리물리 책을 보다가
구면 삼각법에서 막혀 더 나갈 수가 없었다.
아버지의 서가를 뒤져 구면 삼각법 책을 꺼내고
필요한 부분을 찾아 끙끙대며 읽던 중
까다로운 증명에 부딪혀 그만 밤을 새고 말았다.
아침에 아버지와 함께 약수터에 가기로 한 걸 깜빡 잊은 staire는
아버지께서 들어오시는 바람에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펼쳐 놓은 수학 책을 숨기거나 덮을 여유도 없이...
말없이 책과 연습장을 내려다보시던 아버지께서는
staire의 손에서 펜을 건네받으셨다.
거침없이 증명을 써내려가시는 아버지의 손길...
그 모습 뒤에는
채 피지 못한 천재의 번득임과
같은 길을 가려는 아들에 대한 복잡한 감정이 흐르고 있었고...
증명을 마치신 아버지는 펜을 돌려주시며 말씀하셨다.
"늦겠다. 어서 준비해서 나오너라..."
아버지께서 방을 나가신 후
아버지의 글씨를 내려다보던 staire는
펼쳐진 노트에 얼굴을 묻고 말았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어머니, 아버지...
제가 당신의 가슴에 얼마나 많은 못을 박았는지요...
----------- Prometheus, the daring and endur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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